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교/비판과 반론 (문단 편집) === [[안영]]의 비판 === > 「공자가 [[제(춘추전국시대)|제齊나라]]에 가서 경공景公을 만나 뵙자, 경공은 즐거워하면서 그에게 이계 땅을 봉지로 내려주려고 안자에게 의견을 물었다. 그러나 [[안영]]은 이렇게 반대하였다. > > "안 됩니다. 저들은 오만하면서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이들로서, 아랫사람을 교화시킬 수 없습니다. 또 백성을 느슨하게 하여 백성과 정치를 친밀하게 하지 못합니다. 그런가 하면 천명天命만 세워놓고 일에는 게을러, 직무를 맡길 수 없습니다. 게다가 장례에 너무 돈을 들여 백성과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가며, 상喪을 너무 오래 끌어 슬퍼하느라 세월을 허비하니,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. > > 안으로는 스스로 실행하기 힘든 것을 감추면서, 밖으로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[[유가(제자백가)|유자儒者]]입니다. 그래서 복장을 특이하게 하여 얼굴을 꾸미기에만 힘씁니다. 따라서 무리를 이끈다거나 백성을 길들일 수 없습니다. 훌륭한 현인들이 사라지자 [[주나라]]가 쇠퇴해진 것입니다. 위의威儀만을 중시하자 백성의 행동은 천박해지기 시작하였고, 명성과 즐거움만 번드르하게 꾸미자 세상의 덕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. > > 지금 [[공자|공구]]孔丘[* 공자의 본명이다.]는 명성과 꾸밈으로 세상을 현혹시키며, 음악과 춤을 수식하여 무리를 모으고, 사람 사이의 예가 어떠니 하고 복잡하게 하여 의표儀表의 시범을 보이며, 옷깃을 어떻게 하느니 하며 [[예절]]에 힘써 무리에게 뽐내고 있습니다. 많이 배운다고 하면서 세상에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며, 많이 생각한다고 하면서 백성을 도와주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. 수명을 두 배로 늘린다고 해도 그들이 요구하는 교육을 다 배울 수 없고,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들이 요구하는 예절을 다 실행할 수도 없습니다. 아무리 재물을 쌓아도 그들이 말하는 즐거움을 다 채울 수 없습니다. > > 꾸미고 사술을 부리면서 세상의 임금들을 현혹시키고, 명성을 풍성히 하여 백성을 우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. 그들의 도는 세상에 보일 수도 없는 것이며, 그들이 말하는 교화도 결코 백성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. 지금 그런 자에게 봉읍을 주어 우리 [[제나라]]의 풍습을 바꾸게 한다니, 이는 무리를 인도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도가 아닙니다." > > 경공은 이렇게 말하였다. > "좋소!" > > 그리고는 공자에게 그저 후한 예물만 주고 봉지 하사의 일은 유보시킨 채, 그저 공경히 만나면서 그의 치도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.」 >---- ><안자춘추> 中 [[공자]]를 만난 [[제(춘추전국시대)|제나라]] 경공이 공자를 마음에 들어해 그에게 봉토를 하사하려 하자, 재상 [[안영]]이 이를 반대한 일화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